주일예배 설교

누가복음 강해 14: 고향에서 배척받으신 예수
2025-08-03 08:53:51
김상윤
조회수   9

20250803(주일) 누가복음 강해 14

눅 4:14-30 고향에서 배척받으신 예수

 

서론) 예수님은 이제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했습니다.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신 예수님은 이제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감당할 준비가 되셨습니다. 그래서 갈릴리 지역의 여러 회당을 순회하시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시고 치유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복음서는 예수님의 초기 사역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P)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마 4:23).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의 능력과 진리로 사역하시던 예수님을 칭찬했습니다. 엘리야처럼 기적을 행하는 선지자가 나타났다고 기뻐했습니다. 모든 일이 순조로운 것처럼 보였습니다. 오늘 본문의 사건은 누가복음에서는 마치 예수님의 초기 사역에서 벌어진 일처럼 보이지만 마태복음이나 마가복음을 보면 이 사건은 공생애의 중간 정도에 있었던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마 13:53-58, 막 6:1-6).

나사렛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갈릴리 여러 동네에서 칭송받으시던 예수님이 고향에서 배척받으셨다니… 그들은 왜 예수님을 배척했을까요? 오늘 말씀은 소위 예수님의 공생애 취임 설교라고 불리우는 부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의 신학적 의미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중요한 구절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사역이 무엇인지 선언하셨을 때에 사람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배척하고 죽이려 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예수님의 사역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묵상하면서 예수님의 사명에 대해 우리는 어떠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 함께 돌아 보기를 원합니다.

 

본론) 첫째로, 주님의 사역은 가난한 자들을 자유케하는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18-1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P)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나사렛 회당에서 이사야 두루마리를 받아 61장 1-2절 말씀을 찾아서 낭독하십니다. 메시야 예언으로 알려진 말씀이지요. 메시야가 오시면 어떠한 일들을 하실 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예언된 내용을 읽으셨습니다.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P)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이사야 본문이랑 비교해 보면 몇 가지 차이점이 있습니다. 첫째로, 이사야 61장에 있는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가 누가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성경 봉독에서는 빠져 있습니다. 둘째로, 누가복음 본문에서는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이 새로 들어가 있고, 이사야에서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대신에 이사야 58:6에 사용된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압제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라는 표현이 쓰여서 “자유”(ἄφεσις 아페시스)라는 말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복음은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가난한 자를 위한 것입니다.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P) 가난한 자는 단순히 경제적인 빈곤계층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경제적 결핍 외에도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주변부 인생 모두를 포함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갈릴리 어부들, 여인들, 세리와 죄인들, 병자와 장애인들, 그리고 이방인들이었습니다. 당시 성전 중심의 신앙,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 중심의 종교 문화 속에서 부정한 자, 별 볼일 없는 자들로 취급받던 이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주변부 인생들 속에 하나님 나라의 해방과 치유를 선언하시고 있습니다. 오늘날이라면 어떤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이겠습니까? 경제적 불황기에 고통받는 저소득층과 무주택자, 폐업의 위기에 처한 자영업자, 갑질에 신음하는 일용직, 하청업체 노동자, 청년 실업자, 노년 빈곤층 등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인간으로서 제대로 존중과 돌봄을 받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복음이 필요한 가난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포로된 자는 누구일까요? 오늘날 마약이나 알코올, 니코틴, 도박 등에 중독된 사람, 가정 폭력이나 학대의 공간 속에 갇혀 있는 약자들, 고리대금의 채무, 범죄 집단의 불법적인 구조 속에 묶여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눈먼 자들을 고치신다고 할 때에 어떤 이들이 눈먼 사람들이겠습니까? 여러 장애를 가진 장애우들을 생각할 수 있지만,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진리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 왜곡된 자본주의나 신자유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등 정치 이데올로기에 빠져 있는 사람들, 가짜 뉴스나 정치적 선동, 사회적 혐오의 담론에 눈멀어 있는 사람들도 해당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 영의 눈을 열어 하나님 나라의 실제를 보게 하고 우리 정신이 진리로 자유케 함을 얻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자유케 할 눌린 자는 누구이겠습니까? 왕따나 학대, 가정폭력, 성폭력의 피해자들, 난민과 탈북민, 청소년 보호시설 퇴소자 중에서 정신적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울증이나 조울증, 불안 장애 등 정신질환을 겪는 이들도 복음으로 자유케 되어야 할 이들입니다.

예수님의 취임 연설에서 중요한 단어는 자유(ἄφεσις 아페시스) 입니다. 누가복음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자유는 세 가지 차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로, 죄로부터 자유입니다. 죄사함의 은총입니다. 예수님은 종종 죄사함을 받았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치유 사역을 하셨습니다. 친구들이 메고 온 중풍병자를 고치시면서 죄사함을 선언하셨고(눅 5:20), 예수님의 발을 눈물로 적시고 머리털로 닦은 여인에게도 네 죄가 사함을 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눅 7:48).  죄는 근본적으로 우리 인간을 얽매고 노예 상태로 살게 합니다. 죄는 우리를 정죄감과 무력감 속에 살게 합니다. 죄는 자신과 타인에게 고통을 줍니다. 우리 삶을 망가뜨리기 때문에 주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려고 십자가 대속의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죄에 매인 우리를 자유케 하십니다. 둘째로, 사탄에게 매인 자를 자유케 하십니다. 열 여덟 해 동안 귀신들려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인을 고치시면서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눅 13:16). 사도행전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의 사역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예수님께서 치유와 축사의 사역을 통해서 마귀에게 사로잡힌 사람들을 자유케 하셨습니다. 셋째로, 예수님께서 주시는 자유는 희년의 선포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의 은혜의 해”는 바로 레위기 25장에서 규정된 희년(יוֹבֵל 요벨) 규례를 말합니다. 희년은 이스라엘 역사상 한 번도 실천된 적이 없는 이상적인 제도였습니다. 율법에는 있지만, 모든 빚을 탕감하고 노예를 해방하는 혁명적인 일은 현실화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희년을 전파하려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은혜의 해를 이루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도래해서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자유와 해방의 역사가 이루어진다고 하십니다. 

사실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은 이사야 61장 메시야 예언의 성취였습니다. 가난한 자들을 자유케하는 복된 소식을 전하시고 실제로 가난한 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자유와 해방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주님의 사역은 주의 성령이 임한 사람들과 공동체를 통해서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이 “오늘 너희에게 응하였느니라”는 말씀에 아멘으로 응답하는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 주님의 복음은 현실이 되어 갑니다. 주께서 우리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자유와 치유를 경험하게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주께서 우리 각자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해방의 복음을 전파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둘째로, 주님의 사역은 배척하는 이들을 뚫고 전진합니다. 예수님의 사명 선언에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은혜로운 말씀을 듣고 감탄하였으나 다른 사람들은 같은 말씀을 듣고도 자신들이 알던 예수가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사람들은 수군거렸습니다. P)“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22절). 마태복음에서는 “마리아의 아들이 아니냐?”(마 13:55)라고 했고 마가복음에서는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막 6:3)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수군거림의 바탕에는 예수의 출신 배경과 직업 때문에 그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깔려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혼외자이고 평범한 목수에 불과하다고 여기면서 예수님의 메시야 사명 선언 말씀을 회피하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메신저의 자격을 문제삼아서 메세지를 평가절하하고 거부하는 태도이지요. 인간적 편견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오늘 본문에는 다른 복음서에 나오지 않은 사람들의 반응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한 속담을 인용하시면서 나사렛 사람들이 마음에 품은 생각을 꿰뚫어 보십니다. P)“의사야 너 자신을 고쳐라”(23절)는 고대 사회에 잘 알려진 격언은 P)’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베푸는 호의를 나와 관련된 사람들에게도 베풀어야 한다.' 혹은 P)’나와 관련된 사람들에게는 똑같은 혜택을 주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주장할 때 사용되는 속담이었습니다. 가버나움에서 행했다고 하는 기적을 네 고향 나사렛에서도 행하여 보라고 예수님을 시험하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의 아들로서 특별히 고향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의 은혜를 먼저 베풀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 마음을 꿰뚫어 보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탄식하십니다.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24절). 그리고 구약 시대에 선지자의 기적을 통해 은혜를 입은 두 이방인을 언급하십니다. 마지막 남은 곡식 가루와 기름으로 떡을 만들어 엘리야에게 공궤한 사렙다 과부가 3년이 넘는 가뭄에도 그 집에 곡식 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 복을 받은 일(25-26절)과 엘리사가 아람 장군 나아만의 나병을 고친 기적(27절)을 예로 들면서 이방인들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언급합니다. 선지자들이 유대인들이 아니라 이방인에게 기적을 베푼 사례를 굳이 말씀하시자 나사렛 사람들은 분노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성별이나 인종이나 직업이나 신분에 상관없이 가난한 자, 갇힌 자, 눈먼 자, 눌린 자들에게 임하신다는 예수님의 복음 메세지를 그들은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배타적인 유대 민족주의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은혜를 베푸신다는 말은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동네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떨어뜨리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선민으로 택함받았다는 그들의 민족적 자긍심을 훼손하고 있다고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배타주의는 예수님조차 배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간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유대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메시야가 오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시작되고 복음이 이방인에게도 전해져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인의 교제에 참여하기 시작할 때에 격렬한 논쟁이 있었습니다. 유대계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으려면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방인 선교의 사역을 하던 사도 바울 등은 율법의 굴레를 이방인 그리스도인에게 씌우려 하면 안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예루살렘 공의회를 통해서 이방인들에게 유대인이 되라고 요구하는 것은 복음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고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함께 공존하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메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도록 이방인들에게도 권고하도록 조정안이 만들어졌습니다(행 15:20). 이렇게 해서 유대교의 울타리 안에서 자라난 기독교는, 세계 종교로 모든 민족을 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모든 민족과 지역과 문화를 초월하여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나사렛 사람들의 분노를 사 낭떠러지까지 끌려간 예수님은 어떻게 되셨나요? 유유히 그들 가운데로 지나서 당신이 가실 사명의 길을 가셨습니다(30절). 어떻게 예수님께서 분노한 무리 중에서 빠져나오셨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직 예수님께서 죽임을 당할 때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배척하여 죽이려고 하기까지 한 나사렛 사람들의 모습에 우리를 비추어 보면 어떻습니까? 어쩌면 우리도 나사렛 사람들과 같은 태도를 취할 수 있습니다. 나사렛 사람들은 두 가지 문제적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P) 우선 말씀을 들을 때에 설교자에 대해 인간적인 선입견을 가질 수 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인간적인 선입견 때문에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면 아무런 유익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살전 2:13). 하나님께서는 나귀의 입을 통해서도 선지자를 깨우치는 분이십니다. 억지로 사명을 감당한 요나를 통해서도 놀라운 회개의 역사를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P) 나사렛 사람들의 또 한가지 문제는 배타적인 순혈주의 태도를 견지하는 것입니다. 왜 고향 나사렛 사람들을 먼저 챙겨야지 이방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가버나움 중심으로 사역해 왔느냐? 다른 곳에서 행한 기적을 고향에서도 행하라며 예수님을 다그쳤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죄인들을 영접하고 죄인들과 함께 교제하시는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여긴 바리새인들과도 닿아 있는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주의 몸된 교회를 통하여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요 10:16),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눅 19:10)하는 사역을 하고자 하십니다. 우리 주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오셨습니다(눅 5:32). 우리는 이러한 예수님의 죄인을 환대하고 구원하는 사역에 동참하고 있습니까? 

 

결론) 교회는 배제가 아니라 포용의 공동체입니다. 판단하고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고 환대하는 사명을 위해 부름받았습니다. 잃어버린 양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셨고, 가난한 자, 포로된 자, 눈먼 자, 갇힌 자를 자유케 하시며, 배척하는 무리를 뚫고 전진하시는 주님의 사역에 기쁨으로 함께 동참하시는 모든 성도들 되시기를, 포용하고 환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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