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설교

잘 싸우는 법(Fight. Right) 2: 어떻게 싸울 것인가?
2025-05-25 09:35:41
김상윤
조회수   13

20250525(주일)

엡 6:13-20 잘 싸우는 법(Fight. Right) 2: 어떻게 싸울 것인가?

 

서론)지난 주에 이어 오늘은 영적 싸움을 어떻게 싸울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 보겠습니다. 영적 싸움을 싸우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 갑주로 무장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신 갑주로 무장하고 그 영적 무장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잘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영적 싸움을 싸우는 영적 훈련을 계속해 나가야 합니다.

 

본론) 오늘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전신 갑주가 무엇을 의미합니까?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우선 하나님께서 친히 영적 싸움을 싸우신다는 의미입니다. 친히 싸우시는 하나님의 모습에 대한 묘사는 출애굽 장면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출애굽시에 애굽 군대가 뒤쫓아오고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앞에 두고 오도가도 못할 때에 모세는 두려워하는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P)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 14:14). 40년 광야 여정을 마무리하며 모압 평지에서 모세는 우리 앞서 행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말합니다. P)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신 1:30).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싸우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원수들과 싸우십니다. 우리의 원수들이 우리를 속이고 죽이려 하는 상황에 그냥 손 놓고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영적 전장에 나서십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친히 싸움에 나서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P) “공의를 갑옷으로 삼으시며 구원을 자기의 머리에 써서 투구로 삼으시며 보복을 속옷으로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으로 삼으시고,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시되 그 원수에게 분노하시며 그 원수에게 보응하시며 섬들에게 보복하실 것이라”(사 59:17-18). 하나님께서 원수들과 싸우실 때에 갑옷을 입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전신 갑주는 또한 하나님 나라의 구원 역사를 위한 영적 싸움에 우릴 군사로 부르신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명예를 위한 싸움에 우리를 군사로 부르십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 2:3). 군대를 다녀오신 분들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P) 기본군사훈련을 받을 때에 첫 시작이 군복을 입고 장구를 착용하는 법을 배우고 자신이 사용할 무기를 수여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군인으로서 필요한 교육훈련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전신 갑주로 무장하는 것은 하나님의 군대로서 기본군사훈련을 받는 과정입니다. 기본군사훈련은 그야말로 기본에 불과하지요. 실제 군인으로서 소양을 갖추는 것은 자대에 배치되고 현장에서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는 과정을 통해서입니다. 신앙 생활도 어떤 점에서 지속적인 영적 훈련의 과정입니다. 나아가서 영적 훈련과 영적 전투는 분리되지 않습니다. 실제 신앙 생활 속에서 영적 전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영적 훈련도 이루어집니다. P) 사도 바울은 당시 로마 군인이 갖추어 입는 갑옷을 비유로 해서 영적 싸움에 갖추어야 할 준비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영적 싸움을 훈련하고 실제로 싸우기 위해서 갖추어 입어야 할 하나님의 전신 갑주는 어떤 부분들로 되어 있을까요?

 

첫째로, 진리의 허리띠입니다. 성경에서 허리에 띠를 띠는 것은 행동을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출애굽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유월절 만찬을 먹을 때에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하게 먹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출 12:11). P)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일에 언제든 행동할 수 있도록 준비태세를 갖추라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일에 어떻게 준비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의 명령에 순종할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지난 주에 우리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다(엡 6:12), 또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엡 4:27)는 말씀을 받았으면 그 말씀에 순종해서 사람을 대적하는 태도를 멈추어야 합니다. 마귀가 우리 마음에 또아리를 틀고 집을 짓도록 내버려 두지 못하도록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우리 영혼을 정결케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마귀와의 영적 싸움에 대비할 수 없고, 또 영적 싸움에서 패배하게 됩니다. P) 또한 진리로 허리띠를 띠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을 단단히 붙잡는 것을 포함합니다. 역도 선수들이 힘을 쓰기 위해서 허리에 복대를 하는 것을 보신 적이 있지요? 허리가 불편한 분들도 힘을 모으기 위해 복대를 하기도 하지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으면 영적인 힘이 생깁니다. 마귀와 싸울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허리에 힘을 쓸 수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혼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적인 힘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진리로 허리에 띠를 띠시기 바랍니다. 영적 무장의 첫 걸음입니다. 

번째는 의의 호심경을 착용하는 것입니다. 현대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의로 방탄조끼를 입는 것입니다. 심장이나 폐 등 치명상을 입을 수 있는 부분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헬라어로 마귀는 ‘디아블로스’ 곧, 참소하는 자, 비방하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마귀가 하는 일은 비방하고 비난하고 고발하는 일입니다. 마귀는 성도의 마음과 감정을 주로 공격합니다. 섭섭한 마음이 들게 하고, 무시당한다는 기분에 사로잡히게 만듭니다. 불평과 원망이 밀려옵니다. 다 귀찮고 싫어집니다. 무기력감에 사로잡히거나 스스로 무가치하다고 느끼게 합니다. 정죄감으로 좌절하게 만듭니다. 원망과 분노의 감정을 격동합니다. 상처받았으니 받은 만큼 되돌려주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마귀가 시험할 때에 하나님의 의의 호심경으로 보호하지 않으면 영적 싸움에서 중상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 교회에서 사람들에게 상처받았다며 신앙 생활을 그만두는 경우도 있지만, 목회자들 중에도 영적으로 중상을 입어 목회를 아예 포기한 경우들도 있습니다. 마귀의 공격은 우리 정체성과 자존감에 대한 것입니다. ‘네가 그러고도 목사냐? 네가 무슨 교회 항존직분자냐? 네가 진짜 그리스도인이냐? 이 위선자야! 이 쓸모없는 인간아! 널 누가 좋아하겠냐? 다 집어치워라!…’ 마귀는 기회가 날 때마다 우리를 공격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어떻게 의의 호심경을 착용할 수 있을까요? 사도 바울의 놀라운 고백을 함께 읽겠습니다. P)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P)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3-37). 가슴에 손을 얹고 이렇게 선포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 “하나님께서 나를 의롭다 하신다” “하나님의 사랑을 어떤 것도 이길 수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게 하시고 우리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이제는 정죄함이 없습니다. 이제 그리스도가 우리의 의가 되십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자존감의 근거입니다. 이러한 고백이 있으면 마귀가 아무리 비난하고 공격해도 중상을 입지 않습니다. 일곱번 넘어져도 주께서 우리를 붙드시므로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셋째로, 평화의 복음을 전할 준비입니다. 복음 전도는 영적 싸움의 중요한 방법입니다. 영적 생명력의 중요한 시금석은 지금 복음 전도에 헌신하는가 여부입니다. 공동체에 평화를 가져오는 제일 좋은 수단은 복음 전도에 헌신하는 것입니다. 복음 전도에 열심을 내는 공동체 안에서는 교우들끼리 서로 싸울 여지가 별로 없습니다. 교회의 궁극적인 사명이 무엇인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성도의 부르심이 무엇인지 그 숭고한 목적을 기억한다면 싸우고 다투는데 힘을 낭비할 수는 없습니다. 갈등은 언제나 있을 수 있지요. 불만스러운 요소가 없는 관계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도 교회의 본연의 사명, 복음 전도를 위해 교회는 평화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됨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7장 소위 대제사장의 기도에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P)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요 17:23).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온전히 하나될 때에 세상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알게 되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됩니다. 교회는 하나되어 복음전도의 숭고한 사명을 위해 매진할 수 있습니다. 복음 전도는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자랑하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세상에 나타내 보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P)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잠 16:7). 복음 전도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때에 우리 망가진 인간 관계에도 평화와 화해가 임할 줄 믿습니다. 평화의 복음을 전할 준비를 잘 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뉴라이프교회가 복음 전도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공동체 되기를 축복합니다. 복음 전도에 열심을 내어 우리 가정과 교회에 평화가 넘쳐나기를 소망합니다.

넷째로, 믿음의 방패입니다. 영적 싸움에서 믿음은 능동적인 방어의 수단입니다. 마귀는 불화살을 쏘아 우리에게 치명상을 입히려고 합니다. 마귀가 쏘는 불화살은 어떤 것일까요? 불신, 염려, 근심, 낙심, 시기, 미움, 원망 등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입니다. 우리에게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을 쏘아댑니다. 우리가 믿음의 방패로 그것들을 막지 않으면 우리에게 크고 작은 부상을 입히게 됩니다. 우리가 흔히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았다고 하지요. 사람의 언어와 행동이 매개가 되기는 하지만, 그 상처를 주고 받는 상황의 배후에 마귀가 쏘아대는 불화살이 있음을 명심하십시오. 우리가 작심하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지만, 의도하지 않고도 상처를 줄 수 있는데 후자의 경우에는 영적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마귀는 인간 관계를 망가뜨리는 것을 본업으로 삼고 있으니까요. 분쟁과 싸움이 있는 곳에 분명 마귀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 타인에게 마귀가 역사하고 있다고 남을 탓하는 것은 영적 싸움을 제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삶에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과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있습니다. P) 이를 관심의 원과 영향력의 원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언행이나 이미 벌어진 일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P) 그렇지만 그런 다른 사람들의 언행이나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한 나의 반응은 내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사실 영적으로 중요한 것은 내 마음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마귀는 우리가 처한 상황에 대해서 잘못 해석하게 만들고 나쁜 방향으로 생각하게 만드는데 재주가 뛰어납니다. 자신의 부정적인 판단에 대해서 쉽게 확신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판단은 틀릴 경우가 꽤 많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설사 우리의 판단이 맞는 것 같아도 그것이 우리의 영혼에 해를 끼치는 판단이고 공동체를 망가뜨린다면, 그런 판단으로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누군가의 말과 행동에 대해 기분 나쁘다고, 자신을 무시했다고 상처받을 수도 있지만,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로, 자신을 겸손하게 만드는 기회로 감사하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 우리의 기대를 저버렸다고 생각할 때에, 실망스럽고 화가 나는 상황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오히려 하나님만 더 의지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타인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 어떻게 마귀가 역사하든지 그것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내 안에 마귀가 어떤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의 불화살을 쏘아대고 있는지 잘 분별해서 믿음의 방패로 막아내는 것이 영적 싸움의 방법입니다. 영적 싸움의 전장은 내 영혼입니다. 믿음의 방패는 어떤 믿음입니까?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믿음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며 도와 주실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면 사탄의 공격은 성공입니다. 사탄의 불화살은 거짓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마귀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분별하고 막아내면 우리에게 상처를 주지 못합니다. 어떤 점에서 우리를 공격할 때에 도구로 사용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적 훈련을 위해 마련하신 우리의 스파링 파트너입니다.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잠 16:4).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의 불화살이 날라올 때에 무방비로 자신을 노출하지 마십시오. 영적 싸움의 순간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방패가 되시고 지극히 큰 상급이 되신다(창 15:1)는 믿음으로 자신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다섯째로, 구원의 투구를 착용하십시오. 전투에 나가는 군인은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방탄모를 꼭 착용해야 하지요. 또한 군인의 모자는 군인의 정체성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투구를 쓰신 것처럼(사 59:17) 영적 싸움을 싸우는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우리는 구원의 투구를 씁니다. 우리가 영적 싸움을 싸우는 것은 우리가 이미 구원받은 주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대장되신 예수님을 따라 우리도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 이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군대로서 싸움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의 구원을 나타내는 일입니다. 구원의 확신을 가진 그리스도인만 영적 싸움에 나설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구원받았음을 확신하며 앞으로 영원한 구원의 소망이 있고 구원을 전파할 사명이 있습니다.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위해 영적 싸움에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여섯째로, 성령의 ,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십시오. 영적 싸움에서 유일한 공격 무기이지요. 여기에서 사용된 말씀의 헬라어 단어는 흔히 쓰이는 로고스(λόγος)가 아니라 레마(ῥῆμα)입니다. P)로고스가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의 객관적인 진리를 가리킨다면, P)레마는 성령께서 특별한 상황 속에서 개인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읽거나 설교를 들을 때에 교리적 진리로만 이해하는 것은 부족합니다. 시험의 상황 속에서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고 시험을 이길 수 있는 무기로 주시는 것이 레마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 금식하시고 마귀에게 세 가지 시험을 받으실 때에 모두 신명기의 말씀을 인용해서 물리치셨지요. 시험을 이기는 말씀이 레마의 말씀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날마다 주께서 레마의 말씀을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성령의 검, 레마의 말씀을 받으려면 일곱 번째 하나님의 전신갑주의 요소가 필요합니다.

일곱째로, 성령 안에서 드리는 기도입니다. 1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P)“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영적 싸움은 결국 기도에 의해서 좌우됩니다. 하나님의 전신 갑주의 여섯 가지 요소는 성령 안에서 드리는 기도가 없으면 사용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무기라도 그것을 사용할 힘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처럼,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하여야 영적 싸움을 할 수 있습니다. P)영적인 능력은 기도로서만 받을 수 있습니다. P)기도는 영적인 호흡입니다. 영적 호흡이 계속되어야 영적으로 살아있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에 영적으로 깨어 있는 것입니다. 기도가 줄어들면 영적 싸움에서 패배할 수 밖에 없습니다. 기도가 줄어들면 영적 무력감에 빠집니다. 기도의 분량이 채워져야 성령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개인과 교회의 영적 상태를 점검할 수 있는 시금석은 기도 생활입니다. 어떻게든 기도해야 합니다. 시간을 구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P)기도의 양은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막 14:37).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하루 한 시간은 기도의 자리를 지키셔야 합니다. P) 기도의 질도 중요합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마음으로 기도하고 또 영으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고후 14:15). 방언은 성령으로 기도할 수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방언이 아니더라도 성령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내 생각에 갇혀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거룩한 뜻을 구하는데 마음을 쏟아야 합니다. 내게 필요한 기도 제목들만 기도하고 이제 되었다 하고 빨리 기도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묻는 기도, 주님을 잠잠히 기다리는 기도로 나아가야 합니다. 기도를 하는 상태에서 기도가 되는 상태로 나아가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기도를 바꾸어 가십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기도를 인도해 가십니다. 그래야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영적 싸움에서 승리할 힘을 얻습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할 때에 비로소 우리는 중보기도자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P)여러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고 특히 목회자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요청한 대로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릴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중보기도는 포병과도 같습니다. 중보기도자가 많을수록 더 쉽게 영적 싸움을 싸울 수 있습니다. 기도의 자리에 다시 나오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는 기도로 영적 싸움을 합니다.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영적 싸움의 전장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영적 싸움을 피할 길은 없습니다. 악한 마귀는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영적인 덫을 놓아 시험에 빠뜨리고 우리의 믿음과 감사와 평안을 빼앗아가려고 합니다. 영적 싸움을 잘 대비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영적 싸움을 할 수 있습니까?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의 마음 속에서 거짓으로 속이는 악한 영들과 싸우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전신 갑주로 무장하고 성령 안에서 기도하며 싸우시기를 축복합니다.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영적 싸움을 잘 감당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우리 대장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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