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일예배 설교
20250720(주일) 누가복음 강해 12
눅 3:21-22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서론) 할렐루야!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계획은 우리 모두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준비된 것입니다.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룩하고 흠이 없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예정하셨습니다(엡 1:4-5). 이 계획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알게 하고자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과 어린 시절을 살펴 보았고 이제 예수님의 공생애의 첫 일화를 살펴보게 됩니다. P) 바로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는 사건입니다. 공관복음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세례 받으시는 이야기 속에서 우리에게 계시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본론) 첫째로, 하나님은 사랑하고 기뻐하십니다. 22절 하반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P)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에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하늘 아버지께서 독생자 예수님께 하신 말씀인데 아들만 들으라고 하신 말씀은 아니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하늘에서 들리는 이 말씀이 사람들을 향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P)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 3:17). 세례를 받으시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하늘 아버지께서 친히 증거하시는 것이지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들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아들이니 기뻐하시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것과 기뻐하는 것은 늘 꼭 함께 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사랑하신다고 할 때에도 죄인이 죄 짓는 것을 기뻐하시지는 않습니다. 주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실 때에 우리가 원수를 사랑해도 동시에 기뻐하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사랑하다보면, 그 사랑이 나 자신을 변화시키고, 사랑받는 원수를 변화시킨다면, 그 때는 그 원수를 기뻐할 수도 있겠지요. 이미 그 때는 ‘나의 원수’가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자’일테니까요. ’사랑한다’와 ‘기뻐한다’가 어떻게 다를까요? P) 사랑은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 상대방에게 유익을 주려는 의지의 행동입니다. 사랑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P)기쁨은 누군가로 인해, 혹은 어떤 상황 속에서 내가 갖게 되는 만족스런 좋은 감정입니다. 좋아하는 감정이 관계 속에서 실현되면 이제 기뻐하는 경지에 오르게 됩니다. 기뻐하는 것은 뭔가 의미있는 것을 성취할 때에, 사랑의 관계가 발전해 갈 때 생겨나는 긍정적인 감정입니다. 어린 아이의 미소를 바라볼 때에, 생명으로 인한 기쁨이 있습니다. 전심으로 찬양하며 찬송의 가사를 믿음으로 고백할 수 있을 때에 예배의 기쁨이 있습니다. 선포되는 말씀 속에서 나를 향한 깨달음을 얻을 때에 진리와 함께 기뻐할 수 있습니다. 주 안에서 형제 자매들과 함께 주를 위해 수고하며 섬길 때에 헌신의 기쁨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마음으로 용서하고 용납할 때에, 누군가에게 용서받고 용납받을 때에 우리에게는 사랑의 기쁨이 있습니다. 기쁨은 우리가 그토록 소망하는 행복의 핵심적인 요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쁨과 감사가 있을 때에 우리 마음에 행복이 꽃필 수 있습니다. 사랑과 기쁨은 결국 함께 합니다. 사랑하지 않고도 기뻐할 수 있지만, 기뻐하면 곧 사랑하게 됩니다. 기뻐하지 않고도 사랑할 수 있지만 계속 사랑하면 결국 기뻐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의지와 기뻐하는 감정이 함께 할 때에 이상적인 관계가 됩니다. 하나님께 독생자 예수님은 사랑하고 기뻐하는 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을 기뻐하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뭐든 해 주고 싶으신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셨습니다. 누군가 자신을 사랑하고 기뻐한다는 말을 들을 때에 그 사람은 삶의 의욕과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누구에겐가 ‘사랑한다’는 고백을 들어보신 지 얼마나 되셨습니까? 혹은 누군가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한 지 얼마나 되셨습니까? 여러분에게는 여러분의 기쁨이 되는 사람이 있으십니까? 아니 여러분은 누군가의 기쁨이 되십니까?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고 기뻐하는 아들이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고 기뻐하는 존재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을 믿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사랑 자체이시니까요. 죄인을 사랑하시니까요(롬 5:8). 하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기뻐하시고 나를 좋아하신다는 것은 더 믿기 어렵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부분이 별로 없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주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생각과 감정과 행동 속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많은 사람들이 여러분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싫다고 하는 상황에 처한다면 더더욱 그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런 상황을 허락하셨을까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P) 윌리엄 폴 영의 베스트셀러 소설 오두막(The Shack, 2007)이 있습니다. P) 2017년에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3년 전에 추천 영화로 몇몇 교우들께서 함께 보시기도 했습니다. 주인공 맥은 4년 전 오레곤 주의 왈로와 호수에 세 아이를 데리고 캠핑을 갔을 때에 아들이 거의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사고를 겪었고 그 와중에 막내 딸이 연쇄살인범에 납치를 당하여 한 버려진 오두막에서 딸의 피묻은 옷이 발견됩니다. 그 충격으로 맥은 거대한 슬픔에 빠져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겨울 날 “아빠(Papa)”에게서 막내딸이 죽은 그 오두막에서 이번 주말에 만나자는 편지를 받게 됩니다. 어쩌면 이 파파가 자신의 독실한 아내가 늘 말하던 그 하나님일지도 모른다는 의혹을 가지고 그 오두막으로 가는데 놀랍게도 그곳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현현으로 상징되는 세 인물을 만나게 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문학적 상상력으로 재현한 것이 놀랍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나타내는 인물들과 나누는 대화들은 현대인들이 흔히 가질법한 신학적 질문들에 대해 꽤 통찰력있는 대답들을 담고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은 주부의 모습으로 나타나 요리를 하고, 성자 하나님은 목수로 관을 만들고, 성령 하나님은 우리 영혼의 정원을 가꾸지요. 저는 그 중에서 성부 하나님을 상징하는 인물이 주인공에게 했던 대사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나는 자네를 유독 좋아한다네”(“I am especially fond of you”). 어린 딸의 죽음으로 깊은 원망과 슬픔과 분노에 사로잡혀 있는 그로서는 자신의 딸의 죽음을 방치한 성부 하나님의 이런 말씀은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성자 예수님과, 성령 하나님과 대화를 이어가면서 결국 성부 하나님에 대해 일그러진 자신의 생각을 바로잡게 됩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창조하신 만물과 사람들을 기뻐하시는 성부 하나님은 모든 상황 속에서 선을 이루어가시는 분이십니다. P)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협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롬 8:28 새번역).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유독 좋아하신다는 말씀은 참되고 믿을 만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님을 사랑하고 기뻐하시는 것처럼,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들을 사랑하고 기뻐하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유독 좋아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도,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같은 사람들도 유독 좋아하신다니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작품으로 우리의 아름다움과 가치는 우리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우리 자신보다 더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하고 기뻐하시는 존재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사명을 감당할 때에 기뻐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언제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라는 말씀을 들으셨습니까? 21절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P)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모인 백성들 중의 하나로 계셨습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가 무엇입니까? 죄사함을 위한 회개의 세례입니다. 자신을 죄인으로 고백하는 자만이 받을 수 있는 세례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세례받으러 오실 때에 요한은 당황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P)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마 3:14). 예수님은 이렇게 답변하셨습니다. P)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마 3:15). 예수님은 사람들과 함께 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이 목적을 위해 죄사함과 정결함을 바라는 사람들 중에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세례는 예수님께서 사람들과 동일시되는 방법이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고대 교회의 찬송을 인용하여 이렇게 예수님의 겸비하심을 찬양했습니다. P)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6-8). P)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한 순종이 하나님 아버지를 감동시키셨습니다. 어쩌면 공생애를 시작하는 첫 걸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모습을 기뻐하셨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우리 어린 자녀들이 처음으로 뭔가를 했을 때에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 있었습니까? 처음 엄마, 아빠를 말했을 때, 처음 뒤집기를 했을 때, 처음 일어나 한 두 걸음을 걸었을 때… 예수님께서 겸손하게 사명의 길을 시작하실 때에 하늘 아버지께서 마음껏 응원의 말씀을 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P) 우리가 겸손히 사명을 감당하는 길에서 기도할 때에 우리를 사랑하시며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에 하늘 아버지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세례받으신 후 예수님께서 기도하셨다는 사실을 포착하고 있습니다. 신앙 생활에서 기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본분을 기억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기도는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기도없이 우리 신앙은 식물인간과도 같습니다. 아무런 능력이 없습니다. 말씀을 읽어도 기도가 없으면 우리 영혼의 양식이 되지 못합니다. 기도하지 않고 의무적으로 하는 봉사와 헌신은 곧 열정을 상실하고 점차 사라지게 됩니다. 개인과 교회의 신앙의 주요한 건강 지표는 지속적이고 열정적인 기도생활이 있는가 입니다. 하루 한 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데 헌신하시는 모든 성도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늘이 열립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우리 영혼이 열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을 잘 하시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영혼이 닫혀 있기 때문입니다. 라디오를 켜고 주파수를 맞추어야 라디오를 들을 수 있지 않습니까? 기도는 우리 영혼을 깨우고 하나님과 영적인 주파수를 맞추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주파수를 맞추는 것이 처음부터 잘 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기도가 체질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가 삶이 되어야 합니다. 지속적으로 기도의 분량을 쌓아나가야 합니다. 사실 기도는 공부와 마찬가지로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엉덩이로 하는 것입니다. 약속하신 성령이 임하실 때까지 인내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어떤 점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일에 참여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기도를 통해서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기뻐하심을 확인받고 싶으십니까? 연약한 기도의 무릎을 다시 일으켜 세우십시오(히 12:12). 기도하는 시간에 주께서 복을 주시고 그 사랑의 음성을 듣게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셋째로, 성령 충만할 때에 우리 안에도 기쁨이 넘쳐납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에 예수님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예수님도 이렇게 기도했을 것입니다. “네, 아버지. 저도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저도 아버지가 너무 좋습니다. 이제 준비가 되었습니다.”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성령께서 비둘기같은 형상으로 임하셨습니다. 성령께서 임하시고 하늘 아버지의 음성을 들을 때에 예수님의 마음에도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아버지 하나님으로 인한 기쁨이 넘쳐났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사랑으로 교통하시고 기쁨으로 하나되는 모습이었습니다. 누가는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을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다고 증언합니다(눅 4:1).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는 자녀라고, 우리로 인하여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실 때에 우리 영혼은 기쁨으로 응답합니다. P) 떠오르는 태양을 향하여 성장하고 다 성장해서도 늘 동쪽으로 향하는 해바라기처럼 성령께서 임하실 때에 우리 영혼이 하나님을 향하여 사랑과 기쁨과 감사의 꽃을 피우게 됩니다. 늘 주님을 바라보는 주바라기로 살아가시길 축원합니다.
우리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P)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요 15:11). 예수님의 삶의 기쁨의 비결은 늘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변함이 없는 기쁨의 비결은 주님의 기쁨이 우리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자녀다. 내가 너를 기뻐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뭐라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참 좋아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하나님의 걸작품인 우리 자체를 기뻐하시고 흐뭇해 하십니다. 이제 우리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판단을 멈추십시다. 다른 사람에 대한 우리 부정적인 판단을 유보하십시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기쁨에 주목하십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아름답고 선한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우리 기쁨의 근원은 우리를 향해 기뻐하시고, 우리와 함께 기뻐하시고, 우리에게 기쁨이 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P)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 3:17).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P) 세례받으실 때에 예수님께 들려주신 하나님의 음성은, 예수님과 연합하여 사명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 모두에게 들려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P) 하나님께서 사명을 감당하는 우리 걸음을 기뻐하십니다. 사람들의 말에 주눅들지 마시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십시오. P) 성령 충만하여 복음 사역을 위해 준비되어 하나님의 기쁨이 우리 삶의 기쁨이 되시기를 기쁨의 근원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제목 | 성경말씀 | 설교자 | 설교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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