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일예배 설교
20250727(주일) 누가복음 강해 13
눅 4:1-13 마귀에게 시험받으신 예수
서론) 할렐루야! 유래없는 폭염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입니다. 사는 것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존재입니다. 비록 사람들은 우리를 그렇게 보지 않더라도,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현재 우리 모습이 괜찮고 만족스러워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를 향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멋진 계획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만들어가시는 과정 중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소중한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을 재료로 걸작을 만드시는 작업 중에 계십니다.
목수가 나무로 무엇인가를 만들려면 제일 먼저 어떤 작업이 필요할까요? 건조하는 작업입니다. P) 2008년 2월에 국보 1호인 숭례문이 방화로 소실된 사건이 생겼습니다. P) 2013년 5월에 숭례문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복구 작업에 5년 3개월이 걸렸다고 합니다. P) 그런데 그 때에 복구 작업에 사용된 금강송은 이미 최소 5년에서 10년을 건조한 목재였습니다. 귀한 일을 위해서는 준비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도 특별한 준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바로 광야에서 보낸 40일이었습니다. P) 세례를 받으실 때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친히 예수님께 당신의 사랑을 확인해 주셨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눅 3:22b). P) 그리고 오늘 황량하고 척박한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는 장면으로 넘어갑니다. 이러한 전개는 다소 당황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사랑한다면서 왜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 던져 넣으시나요? 성령충만한데 왜 마귀에게 시험을 받게 되나요?
신자가 받는 시험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P)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인격적 연단과 신앙적 성숙을 위한 시험(Test). P) 우리의 욕심으로 인하여 죄를 짓게 되는 시험(Temptation). 이 두 시험 모두 시험하는 자는 구약 히브리어로는 P)’사탄’(שָׂטָן 대적하는 자, 고발하는 자)인데 신약에서 헬라어로는 P) ‘디아블로스’(마귀, 비방하는 자)로 번역되거나 ‘사타나스’로 음역되기도 합니다. 사탄은 마귀/악마와 같은 존재입니다. 사탄/마귀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시험해서 죄를 짓도록 만들고 그 유혹에 빠지면 이제 죄를 지었다고 정죄하고 고발합니다. 사탄/마귀는 속이고 대적하고 비방하고 멸망에 빠뜨리려 합니다. 이 두 가지 시험은 본질적으로 구분된다기보다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따라 영적 성장의 계기(Test)가 될 수도 있고 죄를 짓는 계기(Temptation)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고 승리하심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들이 어떻게 시험을 분별하고 이길 수 있는지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광야같은 인생에서 우리가 통과해야 하는 시험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우리가 직면하는 시험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요?
본론) 첫째로,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는 시험입니다. 생존의 시험입니다. 2-3절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P)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마귀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예수님은 40일동안 광야에서 아무 것도 드시지 못했습니다. 가끔 40일 금식을 하시며 은혜를 사모하는 신령한 분들이 계십니다. 그렇지만 저같이 보통 사람들은 그러한 상황을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대학 때 CCC에서 동계 금식 수련회를 할 때면 그 기간 중에 얼마나 음식 생각이 간절했었는지 모릅니다. 7끼 금식을 마치고 수련회 마치고 동치미 국물과 쌀죽으로 섭식을 하는데 세상 어떤 음식보다 더 맛있는 식사로 기억이 됩니다. 먹고 사는 문제는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합니다. 먹어야 살 수 있으니까요. 마귀는 꼭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욕구를 계기로 시험합니다. 그런데 마귀의 시험에는 예수님을 자극하는 또 한 가지 요소가 있었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너 이 광야로 오기 전에 하나님께서 네게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말씀하셨잖아? 넌 하나님의 아들이니 능히 돌로 떡을 만들어 먹을 능력이 있잖아? 이제 한 번 그 능력을 보여 봐.” 마치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는 마귀의 제안을 예수님께서 거부하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명하지 못하는 것처럼 논리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배가 너무 고프고, 성령님께 순종하여 광야에서 금식하는 수고를 감당했으니, 하나님의 아들로서 신적인 능력을 발휘해서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이 들 만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셨습니다. 누가복음에는 짧게, 마태복음에는 길게 인용되어 있는 신명기 말씀으로, 먹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라는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P)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8:3). 광야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신들의 생존의 문제를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존했습니다. 하늘에서 날마다 내린 만나와 가끔 주시는 메추라기,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따라다닌 반석에서 내는 생수를 먹으며 황량한 광야에서 살아남았습니다.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는 마귀의 시험은 자신의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자신의 생존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로서 능력을 오용하라는 유혹이었습니다. 밀가루로 빵을 만들고 쌀로 떡을 만들지, 돌로 떡을 만들어서는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지만, 한 어린 아이의 헌신을 통해 사람들을 먹이셨지, 아무데서나 굴러다니는 돌로 음식을 만들지는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육신의 생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아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에게 약속하시고 명령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묵상하고 그 말씀에 따라 하루하루 살아갈 때에 광야같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음을 알게 하십니다.
지금도 마귀는 생존의 문제를 위하여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유혹합니다. 스스로 살 궁리를 하라고 유혹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만듭니다. 그리스도인의 생존은 하나님 말씀에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배고픔과 생존의 시험을 대처하셨는지를 기억하십시오. 육신의 생존보다 영혼의 생존이 더 중요합니다. 우리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우리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주께서 말씀하신 사명을 다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사명을 감당하면 생존의 문제는 따라서 해결됩니다. P)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날마다 묵상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둘째로, 권세에 절하여 세상을 얻으라는 시험입니다. 성공의 시험입니다. 누가복음에서 두 번째 시험은 마귀가 천하 만국의 환상을 보여주며 시작됩니다. 세상의 부귀영화를 펼쳐 보여주면서 마귀는 믿기지 않는 말을 합니다. P)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6-7절). 마귀가 천하 만국의 권세와 영광을 자신이 넘겨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요? 신약에서 마귀를 P) “이 세상 통치자”(요 12:31), P) “공중의 권세잡은 자”(엡 2:2)라고 칭합니다. 원래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첫 사람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옛 뱀, 사탄의 말에 미혹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고서 하나님과 관계가 깨어지면서 마귀와 그 졸개들이 이 세상에서 자신들의 영역을 구축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세상 속에서 마귀의 권세는 합법적인 것이 아니지만 실제적인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마귀의 유혹은 그럴듯하게 들립니다. 하지만 자신이 약속하는 것처럼 세상의 모든 권세를 자신에게 절하면 주겠다는 것은 거짓입니다. 마귀는 불법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세상을 자신의 것인 것처럼 줄 수 없습니다. “마귀의 일을 멸하려 오신”(요일 3:8) 예수님께서 그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도록 마귀는 사기를 치는 것입니다. 사기꾼들이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자신이 줄 수 없는 것을 준다고 약속해서 이익을 취하는 것이지요. 마귀는 사기꾼의 왕입니다. 모든 거짓의 배후에는 거짓의 아비인 마귀가 있습니다.
마귀가 우리를 어떻게 속입니까? 권력지향적이 되도록 유혹합니다. 성공하기 위해서 권력에 빌붙으라고 꾀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흔히 그런 방법으로 살아가지요. 성공을 위해서는 그 집단에서 실세가 누구인지, 권력의 향방에 민감해야 한다고 합니다. 위에서 자신을 끌어주는 줄을 잡아야 올라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가능하면 다수이고 실세인 세력에 붙어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들 생각합니다. 경제와 정치가 결탁하고, 언론과 정치가 유착하고, 종교와 정치가 담합합니다. 그러다가 스캔들로 비화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아야겠습니까? 교회 공동체는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사람들이 권력관계와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인다면 이미 그 교회는 주님의 몸된 공동체임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권력지향성을 요구하는 마귀의 유혹을 주님은 이렇게 물리치셨습니다. P)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8절, cf.신 6:13). 세상의 권세를 휘두르는 마귀의 유혹을 이기려면 오직 하나님을 경배하며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세로,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신자라면, P)힘을 가지는 것, P)뭔가 성취하는 것, P)내 생각을 관철하는 것이 중요한 삶의 목표가 아닐 것입니다. P)영향력을 유지하고 P)대장 노릇하고 P)사람들을 주도하는 일 자체에 그리 관심도 가지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P)갑의 지위를 차지하고 P)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 성공이지만, P) 하나님 나라에서는 권력보다 섬기는 일이 중요합니다. P) 성공보다 충성이 중요합니다. P) 신자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경외하는 일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삶의 주인으로 섬기는 일입니다. 세상을 얻는 것보다, 세상적인 권력을 누리고, P)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사람들을 섬기는 일에 마음을 씁니다. 예수님이 주인되는 사람은 권력자로 군림하지 않습니다. 필요해서 힘을 사용하고 영향력을 발휘할 때에도 자신의 것처럼, 자신을 위해서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서, 섬김의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P) 주장하기보다 순종하는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성공을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충성하며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셋째로,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라는 시험입니다. 종교적 시험입니다. 어찌 보면 제일 어려운 시험일지도 모릅니다. 세상적인 성공을 바라지 않는 경건한 신자도 자기중심적 신앙과 종교적 인정 욕구를 자극하는 이 시험을 쉽게 통과하지는 못합니다. 누가는 이 시험을 세 번째에 배치했습니다. 첫 두 번의 시험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신명기 말씀을 인용해서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그러자 마귀는 환상 속에서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더욱 교묘한 방법으로 시험합니다. 이번에는 마귀도 하나님의 말씀, 시편을 인용합니다. P)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또한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9b-11절, cf. 시 91:11-12).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하나님의 아들인 너를 지키시는지 한 번 증명해 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네가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받을 기회를 붙잡으라며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멋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기적인 동기를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오용하는 위험은 신실한 그리스도인들도 피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사용하는 몇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첫째로, 문맥과 상관없이 표현만 취하는 경우입니다. 가정집이나 사업장에서 종종 발견할 수 있는 말씀이지요.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 8:7). 수아 사람 빌닷의 말인데 문맥상 욥을 축복하는 내용이 아니라 비꼬는 것입니다. 원래 성경 말씀의 의미를 오해하게 만들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못한 경우입니다. 둘째로, 불순한 동기로 말씀을 인용하는 것입니다. 사이비 이단들에게서 이런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지만 정통 교회에서도 이런 유혹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임박한 종말이나 지옥에 대한 강조는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성도들을 겁주어 조종하려는 의도를 위해 사용된다면 건강하지 못한 것입니다. 반대로 특정 교리에 몰두하는 모습들에 대한 반발로 성경이 가르치는 종말론이나 치유 교리를 아예 무시하려는 경우도 있습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부분적으로 취해서 자기에게 편리한 특정 이념이나 신념으로 만들어 버리는 경우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 4:16)이지만 사랑이 하나님은 아닙니다. 종종 사랑이라는 관념을 하나님과 동일시하는데 이러다보면 거룩한 하나님의 속성을 망각하고 하나님을 만만하게 생각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 말씀하셨지만, 그 자유는 자신이 주인이 되는 자유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할 자유”(갈 5:13)인데, 자칫하면 세속적인 자유의 가치를 절대화할 위험이 있습니다. 말씀을 오용하는 시험은 소위 신앙 연륜이 있고 잘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입니다. 내가 삶의 주인이라는 태도로, 나의 편의를 위해 말씀을 사용한다면, 그 말씀은 인간의 이데올로기로 전락하고 마귀의 악한 행실을 따르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히 우리를 주장하시도록 늘 겸손히 말씀을 경청하십시오. 자기 논리를 위해 말씀을 사용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사용되는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신 것처럼, 믿음으로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우리 생존을 스스로 해결하려 하지 말고, 하나님 말씀으로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세속적인 성공을 바라지 말고, 하나님만 경배하고 섬기는 삶을 구하시길 축복합니다. 종교적 경건을 과시하려 말씀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도구로 사용되시는 성도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제목 | 성경말씀 | 설교자 | 설교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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